축일 : 8월 20일
시성 : 1174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 시성 / 교회학자 : 1830년, 교황 비오 8세 선포
성인 개요
탄생 : 1090년경, 프랑스 부르고뉴 퐁텐레디종(Fontaines-lès-Dijon)
사망 : 1153년 08월 20일, 프랑스 클레르보 수도원(Clairvaux Abbey)
활동 지역 :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유럽 전역
시대 배경 : 12세기 중세 교회 개혁기, 시토회 발전과 십자군 시대
신분·호칭 : 시토회 수도자, 클레르보 수도원장, 설교가, 신학자, 교회학자
수호 : 양봉업자, 양봉업, 시토회, 지적 장애인, 지브롤터(Gibraltar)
상징 : 벌집(꿀처럼 감미로운 설교와 저술), 시토회 흰 수도복(수도 개혁), 성모 마리아의 환시(성모 신심), 책(신학과 저술), 목장(수도원의 목자)
주요활동
성 베르나르도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깊은 신앙 교육을 받았습니다.
어머니 복녀 알레타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젊은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세속의 삶을 버리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112년 무렵 형제와 친척 등 30명의 동료와 함께 시토회에 입회하여 엄격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115년에는 클레르보 수도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으로 임명되어 뛰어난 영성과 지도력으로 수도원을 크게 발전시켰으며, 그의 영향 아래 유럽 전역에 68개의 자매 수도원이 세워졌습니다.
그는 시토회의 제도를 정비하고 「사랑의 헌장(Carta Caritatis)」의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여 '제2의 시토회 설립자'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황과 국왕, 주교들의 자문관으로 활동하며 교회의 분열을 막고 평화와 일치를 이루기 위해 유럽 각지를 다니며 설교와 중재에 힘썼습니다.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De diligendo Deo)」, 「은총과 자유 의지에 관하여(De gratia et libero arbitrio)」, 「아가서에 대한 설교(Sermones super Cantica Canticorum)」 등 수많은 명저를 남겼습니다.
그의 저술은 성경과 성모 신심을 중심으로 한 깊은 신비신학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수도생활과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인해설
성 베르나르도는 지성과 신심, 활동과 관상이 조화를 이룬 중세 교회의 대표적인 영성가입니다.
그는 교회의 개혁과 일치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모든 신학의 중심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설교와 저술은 꿀처럼 달콤하고 영혼을 살리는 힘이 있다고 하여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특히 성모 마리아에 대한 깊은 신심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신자들의 영성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성 베르나르도의 삶은 참된 개혁은 제도보다 먼저 자신의 회심에서 시작되며, 깊은 기도와 사랑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는 오늘날에도 진리와 사랑을 함께 살아가며, 교회의 일치와 하느님 사랑을 위해 헌신하도록 우리를 초대하는 위대한 교회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