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포시오(콘스탄티노플, St. Photius of Constantinople), 포티우스
축일 : 2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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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사진
작품 9
<성 포티우스가 불가리아 왕과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다>
작가: 러시아 익명의 필사본 세밀화가
연대: 1560~1570년대
소장: 《삽화 연대기》(Facial Chronicle / Illustrated Chronicle of Ivan the Terrible), 제13권 414쪽
기법·시대: 채색 필사본 세밀화, 16세기 러시아
유형: 성인 역사 장면(불가리아 왕과 백성의 세례·개종 도상)
성화특징
화면 왼쪽에는 후광을 두른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성 포티우스가 주교 제의를 입고 서 있습니다. 그의 뒤에는 여러 성직자가 줄지어 있으며, 포티우스는 한손에 펼쳐진 전례서를 들고 다른손을 세례받는 이들을 향해 내밀어 예식을 집전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화면 오른쪽 물속에는 왕관을 쓴 불가리아의 통치자와 여러 남성이 서 있습니다. 왕관을 쓴 인물을 맨 앞에 배치하여 왕과 백성이 함께 세례를 받는 사건임을 명확하게 나타냈습니다. 원자료의 설명 역시 “포티우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불가리아의 왕과 함께 불가리아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장면으로 이 그림을 규정합니다.
배경에는 성벽과 탑, 여러 개의 양파형 돔과 십자가가 있는 도시가 펼쳐지고, 중앙의 가파른 바위산이 화면을 크게 가릅니다. 실제 공간의 원근법보다는 산과 건축물을 층층이 포개어 사건의 장소와 의미를 설명하는 러시아 필사본 세밀화 특유의 서술적 구성이 두드러집니다.
특히 성직자들의 화려한 제의와 붉은 성벽, 녹색 지붕, 청록색 물결이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세례받는 사람들의 상반신을 물 위로 드러내고 두 손을 모으거나 펼친 자세를 반복하여, 한 개인의 세례가 아니라 한 민족의 집단적인 그리스도교 수용이라는 주제를 강조합니다.
성화해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성 포티우스의 단독 이콘과 성격이 다릅니다. 9세기에 제작된 동시대의 성화가 아니라, 16세기 러시아에서 편찬된 대규모 역사서인 《삽화 연대기》에 수록된 역사 세밀화입니다. 따라서 성인의 실제 모습을 전하려는 초상이라기보다, 후대 러시아에서 이해하고 전승한 포티우스와 불가리아 선교의 역사를 그림으로 설명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해당 자료는 작품을 16세기, 구체적으로 1560~1570년대 익명의 러시아 필사본 화가들이 제작한 것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chatgpt-content-reference{index="2"}
작품에서 포티우스는 학자나 신학 논쟁의 주역이 아니라 복음을 새로운 민족에게 전하는 총대주교로 강조됩니다. 그의 앞에 왕과 백성을 함께 배치한 것은 통치자의 개종을 한 개인의 사건으로 그리지 않고, 불가리아 민족 전체의 그리스도교화라는 역사적 전환으로 해석하려는 시각을 보여줍니다.
다만 이 그림을 포티우스가 실제로 불가리아 왕 보리스 1세에게 직접 세례를 베푼 현장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그림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작품은 사건으로부터 약 7세기 뒤에 제작된 역사적·전승적 이미지이며, 화면의 설명 역시 포티우스가 불가리아 왕과 백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후대 연대기의 서술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화정보에서는 ‘포티우스의 불가리아 선교 및 그리스도교화와 관련된 후대의 역사 도상’이라는 성격을 함께 밝혀 두는 것이 정확합니다.
성 포티우스의 성화로 활용한다면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그의 총대주교직이나 학문만이 아니라 복음 선교와 슬라브 세계의 그리스도교화라는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는 데 있습니다. 물속의 왕과 백성, 전례서를 펼쳐 든 포티우스, 그리고 뒤따르는 성직자들의 행렬은 세례가 한 사람의 신앙 고백을 넘어 한 사회의 종교와 문화가 변화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되었음을 강하게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