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감상용 상세 페이지입니다. 링크복사는 해당 연결의 /saint_search/art.php 주소를 복사합니다.
성화사진
작품 9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Santas Justa y Rufina)>
작가: 프란시스코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Francisco de Goya y Lucientes)
연대: 1817년
소장: 에스파냐 세비야,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evilla), 성작 제의실(Sacristía de los Cálices)
기법·시대: 유채, 캔버스, 19세기 초 스페인 회화·낭만주의 전환기
유형: 두 순교 성녀의 전신 제단화(세비야 수호성인 도상)
성화특징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가 화면 중앙에 나란히 서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성녀의 시선 위로 밝은 광선이 비스듬히 내려오며, 어두운 지상의 공간과 천상의 빛을 연결합니다. 두 인물은 맨발로 땅을 딛고 서 있어 화려한 성인의 모습보다는 박해를 견뎌낸 젊은 순교자들의 소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합니다.
두 성녀는 각각 흰 도자기 그릇을 받쳐 들고 있습니다. 이는 세비야에서 도자기를 만들어 판매하며 살았던 자매의 생업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화면 중앙의 성녀는 다른손에 가느다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는데, 이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도자기와 종려나무가 함께 제시되면서 두 자매의 일상적인 삶과 순교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화면 아래에는 깨진 우상으로 보이는 조각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머리와 손처럼 보이는 파편이 성녀들의 발 아래 놓여 있어, 두 자매가 이교 신앙을 거부했다는 전승을 시각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는 단순히 깨진 도자기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과 우상숭배의 대립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한 성녀의 발 곁에는 커다란 사자가 머리를 낮춘 채 온순하게 엎드려 있습니다. 이는 루피나가 맹수에게 던져졌으나 사자가 공격하지 않았다는 순교 전승을 나타냅니다. 사자의 존재로 두 인물 가운데 사자 가까이에 서 있는 성녀가 루피나임을 도상학적으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배경에는 세비야의 도시 풍경이 낮게 펼쳐지고, 멀리 히랄다 탑(Giralda)이 선명하게 솟아 있습니다. 히랄다는 두 성녀가 세비야의 수호성인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상징입니다. 회갈색과 녹색을 중심으로 억제된 배경과 어두운 의복에 비해 성녀들의 얼굴과 손, 흰 도자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밝게 강조되어 화면의 종교적 중심을 형성합니다.
성화해설
이 작품은 고야가 1817년 세비야 대성당을 위해 제작한 대형 제단화 <성녀 유스타와 성녀 루피나>입니다. 작품은 대성당의 성작 제의실에 설치되었으며, 세비야의 대표적인 수호성인인 두 자매를 고야 특유의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후기 종교화의 중요한 작품입니다.
고야는 두 성녀를 화려하게 이상화된 천상의 인물로 표현하기보다, 실제 세비야의 젊은 여성들이 눈앞에 서 있는 듯한 현실적인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두 사람의 의복도 지나치게 장식적이지 않으며, 맨발과 소박한 도자기는 그들이 평범한 노동으로 살아갔던 여성들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표현은 두 성녀의 성덕이 특별한 신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이루어진 신앙의 선택에서 비롯되었음을 부각합니다.
화면에 배치된 상징들은 유스타와 루피나의 전승을 단계적으로 설명합니다. 두 성녀가 받쳐 든 도자기는 그들의 생업을 나타내며, 발 아래 깨진 우상은 이교 신앙에 대한 거부를 암시합니다. 종려나무 가지는 그 결과로 맞이한 순교와 천상에서의 승리를 나타냅니다. 여기에 루피나의 사자와 세비야의 히랄다까지 더해져 두 자매의 생애와 순교, 그리고 세비야의 수호성인이라는 의미가 하나의 화면 안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발 아래의 파괴된 우상은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요소입니다. 유스타와 루피나의 전승에는 이교 축제와 우상숭배를 거부한 사건이 순교의 직접적인 계기로 전해집니다. 고야는 그 이야기를 단순한 도자기만으로 암시하지 않고, 성녀들의 발 아래 쓰러진 우상의 파편을 배치함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거부하고 어떤 신앙을 선택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성녀들이 그 위에 당당히 서 있는 모습은 우상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승리라는 전통적인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루피나 곁의 사자는 더욱 구체적인 개인적 상징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루피나는 맹수에게 던져졌지만 사자가 그녀를 해치지 않았고, 결국 다른 방법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고야는 사자를 사납게 포효하는 맹수로 그리지 않고 성녀의 발 가까이에 조용히 엎드린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맹수조차 순교자를 해치지 않았다는 기적을 과장된 동작 없이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배경의 히랄다 역시 단순한 장소 표시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유스타와 루피나는 오랫동안 세비야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았으며, 지진으로부터 히랄다를 보호했다는 전승 때문에 두 성녀와 히랄다는 세비야 미술에서 긴밀하게 결합되었습니다. 고야는 히랄다를 성녀들이 직접 받쳐 드는 전통적인 구도 대신 멀리 도시 안에 세워 두어, 두 성녀의 이야기가 특정한 순교 사건을 넘어 세비야라는 도시 전체의 신앙적 기억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화면 위에서 내려오는 빛은 작품의 의미를 완성합니다. 두 성녀는 지상의 도자기와 깨진 우상, 사자 사이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들의 시선과 천상의 광선이 서로 만나면서 화면에는 지상에서의 시련에서 천상으로 향하는 강한 상승감이 생겨납니다. 고야는 이를 통해 순교를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평범한 삶 속에서 지켜낸 신앙이 마침내 하느님을 향해 완성되는 사건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